싸움구경은 역시 재미있다

사실 어제의 사건이긴 했는데 오늘 연장전을 치르는 걸 본 덕에 쓰는 포스트


어제 오후쯤이었나.  웬 나이가 20대에서 많이 봐 줘도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들어와서 기초노령연금의 지침 요약본을 달란다.  적어도 이번달부터 줄창 어르신들이나 그 가족들에 의한 질문공세에 시달리긴 했지만 이런 사람은 또 처음 보기에 일단 “우리 메뉴얼 두께가 이렇소.  재산 사항은 많이 안 나와있고 개괄적인 것밖에 모르오”라고 했더니 그래도 지침이 있을 거냐며 버티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밖이었으니 노령연금 담당이었던 주민 사무장 아저씨에게 sos를 요청.  와서는 나와 비슷한 말을 또다시 하기에 그 여자 은근히 짜증을 내더라.  그러면서 자신도 어르신을 모시고 있고 다른 어르신들에게 알려줘야하지 않느냐며 다시 지침을 내 놓으라며 버티고 있는데다 이것저것 메뉴얼을 보며 사무장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은근히 안 듣고 있는 눈치를 보이는데….(하긴 담당자가 공부를 안 하긴 많이 안 했지.  오늘 이거 정리하면서 보니 나도 “이거 받을 사람 대체 몇이나 되겠냐”싶을 정도로 조건이 까다롭더만)


그런 식으로 사람 말꼬리 잡으며 헛점을 노려 치고 들어가는 전법은 이 업계(?)의 전매특허와 비슷한 구석이 많으니 담당자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왔냐”며 의심을 할 게 불을 보듯 뻔한 일.  나 역시 이제까지 많은 민원을 받아봤지만 저런 식으로 대놓고 치고 들어가는 방법을 구사하는 이들은 공무원들 이외에는 본 적이 없었으니 의심이 갈 수 밖에.  게다가 사람이라는 게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는 게 당연하다보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100%로 믿는 사람은 없었는데 옆에 지나가고 있던 행정 사무장 아저씨가 “대체 어디서 온 겁니까?”라고 물어봤었다.  공무원 특유의 그 깐깐한 언성으로.
그러자 이 아가씨 갑자기 화를 벌컥 내며 “내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당신들은 내 물음에만 대답하면 된다!”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더니 “이래서 한국의 공무원들은 글러먹었다”라며 두 아저씨와 함께 말싸움을 전개하는 게 아닌가.  이 일을 하며 여럿 많은 또x이들을 봐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 게다가 남의 싸움이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보고 있자니 흥미롭더라


그렇게 20여분이 지나 처음 대화를 시작했던 아저씨가 민원인 달래고 온다며 데리고 나갔는데 30분이 지나도 안 들어오기에 뭐 하나 했더니 장장 30분간 그 여자의 득득거리는 설교 아닌 설교를 들어야 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 민원은 종료된 듯 보였다


오늘 오전 전화가 오기에 받았더니 대뜸 동장을 바꿔달란다.  보통 동장을 찾는 사람은 장학회 회장이나 부녀단체 회장정도인데 나이도 젊은 목소리에 동장을 바꿔달라니  의심이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민원을 제기하겠단다.  그래서 동장이 아닌 민원담당자를 바꿔주면서 동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으니 민원 담당자가 상담해보라고 했더니 상대방 왈 “왜 그렇게 자주 자리에 없어요?  이거 직무태만 아니예요?”란다.  …이거 어제의 그 여자다!
일단 바톤은 민원접수 담당자에게 넘어갔으니 그 담당자 불쌍하게도 1시간동안이나 전화통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사무장 아저씨 둘이 합동으로 “그만 끊어라”라고 할 때까지.  전화를 끊고 그가 한 이야기는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동장에게 민원을 제기하려 했는데 동장에게 가지 못했으니 담당자에게 어제의 이야기를 1시간에 걸쳐 반복을 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헌법 운운까지 나왔으니 전화받은 사람은 질릴대로 질릴 수 밖에(뭐, 똑똑하다고 하는 듯이 이야기는 했지만 그건 똑똑한 게 아니라 정신감정을 좀 받아봐야 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동장과의 민원상담이 불발로 끝났으니 그녀는 즉시 구청에 신고를 했고 총무과 기획감사실 등지를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 덕에 오늘 하루도 한 여자 덕분에 어정쩡한 사무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저런 식으로 전화를 걸어대는 사람은 별달리 두려운 상대로 취급하지 않는다.  보통 저런 사람들은 전화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그칠 뿐이기에 그 위기만 넘기면 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담당자나 공무원을 괴롭히고 싶으면 이론 무장 빵빵하게 해서 인터넷에 글을 남겨라.  그곳에는 담당자의 실명과 전화까지 싸그리 공개해야 하는데다 증거가 남으므로 그쪽을 더 귀찮아하지만 은근히 신경을 쓰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과 같은 민원을 제기한 여자의 경우는 인터넷보다 전화를 이용하여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한 듯 한데 그래봤자 곧 잊혀진다.  공부는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만 대응 방법이 틀렸다는 거다.  그 전에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걸 잊고 있는지 상당히 일방적인 자세가 꽤나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사실이고 공부 깨나 했으면 그걸로 먹고 살 일이지 트집을 잡아 난리치는 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역시 싸움구경은 보다보면 흥미롭더라는 걸 새삼 느낌 이틀이었네

砂沙美에 대하여

게임은 게임, 현실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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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구경은 역시 재미있다에 1개의 응답

  1. haessal 님의 말:

    그 젊은 여자, 왠지 좀 짜증나는 타입이군요. 거참…

    ps. 블로그 주소 살짝 바뀌었습니다. http://eurielarin.cafe24.com/tc

    • 砂沙美 님의 말:

      싸우는 당사자는 열받을지 몰라도 옆에서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더군요. 물론 그런 타입은 상당히 짜증나긴 합니다. 아마 공무원공부 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거 해소하려 온 걸지도 모르죠. 주소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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