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의 낙태에 대하여

요즘 주위에서든 밖에서든 시끄럽다.  그래서인지 포스트거리가 늘어 좋아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참 애매한데, 오늘은 대선주자 중의 한 사람인 이명박씨의 “장애아 낙태발언”에 대해 한마디 해 볼까 한다.  일단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하고


대체 누굴 뽑아야 되는걸까나 – lakie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이명박 ‘장애인 낙태·동성애 비정상’ 발언 파문 – 한겨레 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명박씨는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저 사람이 초짜 의원이나 초짜 시장도 아니고 현재 나라의 대표자가 되려는 사람인데 하는 말마다 저렇게 문젯거리를 만들면 어디 신뢰성이 가겠는가.  게다가 요즘들어 관심있게 지켜보다보면 사고방식이 딱 70~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걸 느낀다.  지금은 21세기인데.
가족들과 식사시간중에 하는 이야기로도 저 사람이 현재의 대세라고 한다.  뽑을 사람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보이기에, 부산이다보니 의리로 한나라당이기에.  차라리 박근혜씨가 나오면 그녀를 밀겠지만 그 아줌마는 현재 별로 승산이 없어보인다.
저런 말을 거침없이 했다는 것은 깊이 묻어두고 있는 사고방식이 그런 것이고 현재 사과를 한다고 설레발을 치더라도 주워담을 수 없기에 아마 두고두고 풍자거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그의 생각이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사고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은 가려가면서 했었어야 했다


이성적으로 말하자면 태아에게도 생명이 있으니 낙태는 임산부와 태아의 치명적인 생명의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보지만 솔직히 현실적으로 난 그의 말에 동조하고 싶더라.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그러나 지금은 처절하게 겪고 느끼고 있는 사회에서 받는 느낌들, 주위 사람들의 반응, 부모님들의 걱정, 동생의 걱정 등을 현재 너무나 뼈져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길을 찾고 세상에 태어나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을지,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버리고, 주위의 시선들이 고역일 정도로 지나친 관심이나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도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해질 때가 있다.  그 동안 여러가지 직업을 가져봤지만 그 중에서 가장 평등하게 지냈다고 여겨졌던 곳이 공직사회였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렇게 평탄하지도 못한데다 나보다 훨씬 더 양호한 사람들의 파티같이 느껴진 적도 많았었다.  사촌동생이 복지관에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돌보며 취업알선으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들려준 이야기는 암울할 정도로 어두웠고 실제로 직업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취업알선을 받는다거나 상담을 받아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학습능력이 좋아봤자 그건 그 공간에 있었을 때 뿐이고 정작 나와보면 주어지는 일들은 지극히 단순한 단순노동이 대부분이며 그걸 선생님들도 알기에 퀄리티가 좀 있다고 여겨지는 학생들에게는 취업알선이 좀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신지체를 제외하고 가장 취업시키기 어려운 장애가 시각/청각장애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뭐 하러 직업학교에 왔나, 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30여년동안 쌓아온 게 많다보니 ‘결혼, 출산’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게 되었고  부모님 역시 이 문제로 인하여 내게 뭐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부모님들 역시 낳아서 길러오면서 품었던 희망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계시고, 다음대에 태어날 아이가 또다시 장애를 갖고 있다면 당신들이 겪었던 고통과 좌절을 또다시 나와 내 자식이 맛봐야 한다는 걸 잘 아시기에 남들처럼 내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스스로도 아예 생각이 없고.  그래도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하니 직업을 가지라는 것이 내게 부여된 부모님들의 마지막 희망인데 이것도 참 만만치 않아 문제다.  하긴 요즘 멀쩡한 사람도 취업하기 어려운 판에 장애인 취업이 쉬울 리가 있겠느냐마는


이전에 일했던 구청에서 들은 농담섞인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외국인 범죄가 다른나라에 비해 적은 것은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경계하고 본다”는 의식이 국민성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무리(자신)과 다르면 곁눈질을 하든 째려보든 쳐다보든, 상대방이 민망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갖고 스토킹(?)하고 쳐다본단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가 결국 부담스러워 자리를 피하게 된다나 뭐라나


세상에 태어나 여러 경험을 하는 것도 행복이긴 하다.  그러나 이 나라는 장애인이 살기에는 너무나 척박하다, 옛날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돈”으로 만든 사회복지시설이 대부분이고 사람들의 마인드는 아직까지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없다면 느끼지도 못할테니 그건 뭐라고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긴 하지.  게다가 요즘 인터넷을 돌다보면 연령층이 낮을수록 개인주의가 심각하여 현재의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점점 더 뒤로 후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가 장애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 같다.  돈이 좀 있으면 가족 모두가 사회적 마인드가 괜찮은 나라로 이민가서 사는 것과 낳아서 척박한 현실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사 포기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보인다.  첨언하면 요즘은 지체/시각/청각 같은 표면적인 장애인보다 환경과 식생활이 나빠지기 때문에 정신지체/내부장애(정신, 심장 등)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한 집에 하나씩 장애인이 있어봐야 사회적인 마인드가 바뀔까, 라고


이명박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옆길로 샜는데 여하간 장애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기란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듣기로는 옆나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만 확인은 못 해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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