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씁쓸한 이야기

기초노령연금신청으로 현재 동사무소들은 어르신들이 너무나 많이 드나드는 통에 여기가 경로당인지 동사무소인지 모를 정도인 때가 가끔 있다.  게다가 오는 사람들이 순순하게 서류를 다 챙겨오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게 아니라 척 봐도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음에도 바락바락 우기는 사람들 덕에 신청받는 시간이 지연되어 열받는 건수가 한두건이 아닌데 오늘은 열받는다기 보다 좀 황당한 경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이 집의 입장으로선 재난이지만


보통 노인들의 거주형태는 자가/전월세/자식과 함께 거주/자식의 집에 무료임대, 가 많은 편인데 자가나 자식과 함께 거주하는 형태는 따로 서류를 받지 않지만 전월세는 게약서를, 자식의 집에서 무료임대를 하는 경우는 자식에게 무료임대 확인서나 혹은 자식이 걸어준 계약서를 받고 있는 중이다.


오늘 오신 어떤 어르신.  자신은 집이 있다며 순순히 대답을 하기에 전산조회를 띄워봤더니 집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르신에게 “할아버님, 할아버님이 말씀하신 집이 안 나오는데요.  혹시 전세인 거 잊어버리신 거 아닙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이 어르신의 대답이 “그 집은 내 집이야!  증거를 보여달라면 보여줄 수도 있어!”라는 것이다.  신청을 받는 쪽이야 정확한 자료가 있으면 더할나위없이 좋으니 “그럼, 매매게약서나 등기부등본 가져오시면 저희가 수정해드리겠습니다”라고 일단 돌려보냈었다.  1시간이 좀 지났나?  그 어르신은 약 10여년 전의 등기부등본(처음 봤다, 그런 등기부등본)을 들고 와서는 “자, 여기 증거가 있으니 확인해 봐”라는 것이다.  10년전의 자료를 가지고 확인이 될 리 만무한데다 토지 및 건축물대장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담당자가 한창 민원인을 상대하는 중이라 일단 어르신을 돌려보내고 다른 변동사항이 있으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어르신이 집으로 돌아가신 후 시간이 지나 담당자에게 토지 및 건축물 대장을 공부로 떼어 보니 어르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떡하니 뜨는 게 아닌가.  그것도 4년 전에 집주인이 바뀐 것.  그걸 보고 황당해하며 신청을 받았던 아가씨는 다시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님, 이 집이 XXX씨의 이름으로 나오고 할아버님의 이름은 없는데 XXX씨가 누군지 아십니까?”라고 했더니 자기 사위(…)란다.  엥?  사위?  그 이후에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간 이후에 전화는 끊겼는데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난 어르신.  어지간히 열이 받으셨는지 씩씩대며 오셔서 우리가 떼 놓은 건축물대장을 보여달라고 하더라
대장을 보여주며 “정말 이 집이 할아버님 집이 맞습니까?”라고 했으나 그 어르신은 끝까지 그 집은 자신의 명의의 집이며 누구에게도 넘겨준 일이 없다고 말하며 허탈한 표정으로 “이제 내게 남은 건 맨발뿐이구나”라는 말씀과 함께 좀 더 알아보고 오겠다며 일단 신청을 보류하고 돌아갔었다


사실 이런 신청을 받기 전까지 은근히 있겠거니, 라는 생각은 했었으나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기에 영원히 없을 줄 알았더니 이런 일을 지켜보고 있자니 좀 씁쓸하다.  물론 어르신이 4년전에 넘겨 줘 놓고 잊고 있을 가능성과 부인과 딸이 작당하고 어르신의 인감을 도용하여 먹었을 수도 있고, 사위와 딸이 단독으로 저질렀을 수도 있겠으나 여러모로 씁쓸해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그에 비해 별거중이면서 사실이혼했다며 바락바락 우기는 건 아주 애교로 보이더라


오늘의 교훈


남에게 절대로 자신의 인적사항(신분증 등)을 맡기지 말 것
인감을 가족이라더라도 뗄 수 있도록 넘겨주지 말 것
돈은 신성하며 그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이라도 팔 수 있으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즉, 개인정보 관리는 남이 해 주는 게 아니니 스스로 철저히 지킬 것

砂沙美에 대하여

게임은 게임, 현실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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