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보던 애니를 지금 와서 보면 가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시각차를 가장 크게 느꼈던 게 있다면 아기공룡 둘리와 에반게리온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에 보던 둘리는 둘리네는 말썽 부리는 게 당연한 거였고 애들을 맡아 키우고 있는 고길동이 애들에 대해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애들은 정말로 싹수가 노란 말쌍꾼들이고 애들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떠안고 사는 고길동이 생불(生佛)로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에반게리온의 경우는 어린 시절에 보던 신지는 소심한데다 요즘 말로 하면 찌질함까지 더하여 애니를 보면서 "참 성장 안 하는 놈이네…"라며 혀를 끌끌 차며 봤는데 요즘 보니 얘만큼 정신력이 강한 애도 없더라.
자신을 버리다시피 한데다 오히려 질투(?)로 애를 굴리는 아버지, 쓸데없이 참견만 늘어놓고 해결은 못 해주는 어른인 미사토를 비롯한 네르프 직원들, 좀 친해졌다 싶었더니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남매같은 레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아스카, 유일하게 마음을 열어가며 친해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어라? 이게 아니네. 넌 살아야 하고 난 죽을테니까 날 죽여주고, 다음에 또 보자~"라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리는 카오루
이런 사람들 사이에 사는 애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게 용할 정도다. 애니라 가능한 이야기인가?
한 작품을 보면서 시각이 달라진다는 건 그만큼 사회생활을 한 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제작자의 다른 의도를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보는 눈이 길러졌다고 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