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담기 위해 나간 출사 – 경북 영천시 금호읍

사용자 삽입 이미지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일구시고 아버지를 포함한 4형제에게 물려주신 사과밭.  지금은 거의 양파밭이 되다시피 했지만 그 밭의 절반정도가 (썩을)4대강인가 뭐시긴가에 의해 강제수용을 당하게 되어 그 보상관계때문에 일가친척들이 모두 금호로 모이는 일이 있었다.  어른들이야 보상이 나오니 돈이 생겨 좋으신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썩 달가운 기분이 아니더라.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 이야기가 10년 전부터 나오던 것이라 지지부진하던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중학교 가기 전까지 방학기간동안에 살던 집과 시설이 다 뜯기고 그게 도로가 된다고 생각하니 좋은 기분일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반대따위는 씨알도 안 먹히지.  오히려 반대했다간 소송에 끌려다니, 강제로 땅 뺏겨 등등 골치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으니 말이다, 젠장


그렇기에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여 디카를 들고 간만의 출사(?)를 나갔다



– 어린 시절에 고모와 사촌들과 수영을 하거나 썰매를 타던 금호강은 물이 거의 흐르지 않을 정도로 그 물의 양이 너무 줄어들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비 좀 많이 오면 둑이 넘실거릴 정도의 폭과 깊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뭐냐!?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강이 왜 이따위가 된 거냐!?  물이 거의 없잖아!  20년 전의 그 물의 흐름은 대체 어디로 간 거냐!?
– 막내숙부님께서 언젠가 “지붕을 때워도 때워도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한 이유를 사진을 찍다 보니 알겠다.  슬래트가 거의 삭아서 새로이 지붕을 얹지 않는 이상은 보수가 죽어도 안 될 것 같더라
– 사과와 그 궤짝을 보관하던 창고는 열쇠가 없어서 못 열겠더라.  대신 그 옆에는 파와 각종 농기구들이 짧은 햇볕을 받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거 저녁에 다 집어넣고 가지 않으면 몽땅 고물 수집하는 이들에게 도둑맞는다고
– 별채의 아궁이는 거의 사용하지 않아 그 온기가 식었지만 작은방은 늘 사용하는 공간이다보니 그곳에는 항상 불을 때고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불꽃은 좋지만 연기는 괴롭더라.  지금은 불 때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옛날엔 사과나무라도 썼지만 요즘은 대체 무슨 나무를 가져다 사용하시는 걸까-_-;;  쌓아놓은 거 보니 꽤 많던데
– 사실 가장 경악한 것은 대문이었다.  하긴 못해도 내 기억으로 최소 30년은 넘었으니 말 다 했지.  벌어져 움직이지 않아 그냥 내버려둔 것 같았는데 용케도 고철상에서 가져가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화장실 문짝도 어디론가 날아가고 안 보이더라(…)  여기 사람 사는 집 맞는데 환경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 옛날엔 늘 경운기나 농기구가 들어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기계창고와 경운기 주차장을 처음 들어가 봤다.  지금은 경운기와 농기구 대신 작은방에 불을 때기 위해 쌓아둔 장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놀란 것은 다 무너져가고 있어도 지붕의 이음새는 멀쩡히 유지하고 있더라는 것
– 좀 난감했던 것은 생각보다 생활쓰레기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친척들이 버린 것도 있지만 지나가면서 버리는 것들도 꽤 많았던 듯 대부분이 농사에 관련된 쓰레기들이었다.  여기 사람 사는 집 맞는데….;;;
– 둑 건너편에도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혹은 관리를 하지 않아 그런지 억새만 잔뜩 보이더라.  가뜩이나 강줄기가 줄어들어 피폐해 보이는데 이러니 아주 눈물나겠더구만.  그런데 강 건너편에는 벌써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지 둑쪽에 자전거도로도 있고 아주 판판해 보였다.  저것이 (썩을)4대강 정비의 파워라는 건가


사진을 찍으며 놀란 게 하나 있었는데 수돗가 앞에는 내 나이보다 많은 목련나무가 하나 있다.  둥치의 키가 내 키와 비슷한데 이게 밑둥쪽에는 가지만 남아있지만 윗쪽은 꽃이 피기 위해 꽃봉오리가 피어 있더라.  올해가 제 수명의 마지막이라는 걸 알고 그러는 건지 단순히 날씨에 반응하여 제철을 잊고 피는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 밭의 역사였던 목련나무만큼은 살리고 싶었는데 건설사에서 딱 잘라 “니들이 옮겨 심으세요”라고 거절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무참히 베어져 나갈 것 같다.  돈이 적게 든다면야 1년치 월급을 싸그리 갖다 붓는 한이 있어도 옮기겠지만 포크레인과 그 인부를 부르고 옮기고 다시 심는 과정에서 상당한 돈이 들기에 포기해야할 것 같아 씁쓸하다


추억에 매달려 사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사라져가는 걸 보고 있으면 결코 좋은 기분이 드는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추억이 하나씩 영원히 과거의 한 조각으로 남는다는 기분은 웬만하면 맛보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그걸 바라지 않는가 보다, 쩝…

砂沙美에 대하여

게임은 게임, 현실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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