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거가 잦다보니 자연히 후보자들을 추려내는 작업이 필수가 되었다. 사실 요즘은 후보자 난립이 좀 심한 편인데 이번 보궐선거는 그 극을 달리는 듯 보였으니 간단히 내가 후보자를 골라내는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순서는 우선순위 순으로 나간다
1. 점자공보물의 충실성
: 중증 시각장애인이다보니 동에서 작업한 장애인명단에 반드시 낀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늘어난다며 상당히 툴툴댔는데 이게 후보자를 추려내는 척도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일단 점자공보물이 먼저 오기 때문에 비교를 하는 셈인데 얼마나 점자가 성실하게 찍혀 있는지, 내용은 충실한 지 확인한다. 읽을 수 없기는 하지만 페이지 수나 종이질, 찍어놓은 표현물들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그나저나 나도 점자 좀 배워야 하는데…
2, 범죄경력의 유무
: 후보자가 경범죄는 시국범이든 범죄경력이 있으면 그 공보물은 쳐다도 안 본다. 밑에 소명자료를 첨부한다 해도 경찰서를 들락거렸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니까. 실제로 범죄경력을 수정테이프로 감춘 사람도 봤고, 은폐했다 들통나서 범죄경력을 추가한 사람도 봤기에 사실 이건 썩 믿을 게 못되긴 하지만 내 지역의 일꾼이 범죄경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3, 본인/직계비속의 군 제대 여부
: 본인 및 직계비속의 군 제대 여부가 두 번째가 되겠다. 방위? 아웃이다. 의가사 제대? 갖가지 이유로 인한 면제? 공보물 자체를 갖다 버린다. 난 만기만 인정해 준다. 계급이 높다면 점수를 좀 더 쳐 준다. 적어도 군을 만기로 제대하거나 계급이 높다면 그만큼 4대 의무에 충실했다는 말이 되니까
4, 본인/직계 존비속의 세금 납부 내역
: 세금을 얼마나 냈느냐를 따진다. 보통 선거를 하게 되면 돈이 무지막지하게 드는데 그만한 재력을 가지고서도 세금이 적으면 역시 그 공보물은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세금 역시 “납세의 의무”라는 4대 국가의무에 속하니 성실히 내는 넘을 좋아할 수 밖에. 그런데 공보물에 불만인 게 납세실적이 너무나 간략하다는 거다. 좀 자세히 만들어 줄 수는 없냐, 선관위?
5, 공약
: 이건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비슷비슷한 공약을 내기 때문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특별히 튀는 공약이 아니고서는 겉멋만 든 공약, 실천불가능한 공약들이 지천에 널려있으므로 눈에 안 들어온다. 이미지 정치라는 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제발 부탁이니 후보자들은 실천 가능한 공약을 게제해 주기 바란다. “재개발 확실히 하겠습니다!”같은 건 내게 와 닿지 않는단 말이다. 우리동네는 재개발 지역이 아닌데다 완전 주택가인 동네에 대체 재개발/뉴타운 공약을 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땅값만 미칠듯이 올려서 골탕먹이려고? 차라리 “제 돈으로 임기 내에 반드시 노인 복지관을 짓겠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
…저 중에서도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하면 방바닥에 죽 늘어놓고 마음 가는대로 찍는다…사실 다트를 사다놓고 뺑뺑이를 돌리며 찍고 싶지만 너무 위험해서 그렇게는 못 하겠고 발에 밟혀도 끄떡 없을 사람을 찍는다
내일이 보궐선거라 사무실에서는 투표용구를 나르랴, 선거업무를 할 사람들에게 교육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의 투표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동네 사회담당자는 5%를, 나는 15%를 생각하고 있지만 그 이하가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