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해 보는 총선용 점자공보물 평가

흐…결국 선거때문에 오늘 오후 내내 홍보물 봉투작업에 매달려야 했었다.  지난 대선과는 달리 하루만에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끝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내일부터 배포를 시작해야 하므로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했던 모양이더라.
내가 사는 수영구에선 국회의원 후보는 셋이 나왔고 나머지 6~7장은 모두 비례대표 정당홍보물이었는데 그 중 마지막 부분의 정당명을 보고 기절할 뻔 했더랬다.  정당 이름이 “기독당”.  표지부터 ‘하나님’이란 단어를 언급하더니 안의 내용은 더 가관이다.  가히 충격과 공포에 떨 정도였는데 이건 직접 보면서 충격과 공포에 떨어봐야 안다.  나 혼자만 당할 수 없다.  게다가 통일교도 정당을 만들었던 모양인데 이동네도 씌여있는 글의 의도가 아스트랄로 가는 건 마찬가지.  개인적으로 종교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는데 이번 대통령의 성격이나 행적이 워낙 아스트랄하다보니 별별 종교단체에서 정당을 만들어 날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 하긴 지지난 대선때는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는 표어를 내걸어 나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불교계 인사도 있긴 했었지, 결국 사기로 들통나 잡혀가긴 했지만.


그렇게 늦게 작업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니 수영구 선관위에서 내게 보낸 점자형 홍보물이 있기에 “오냐, 이번에도 이걸로 점수 좀 매겨주마”라는 심산으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번 선관위의 공보물은 점자와 묵자가 뒤섞인 형태가 아닌 앞부분은 점자로, 뒷부분은 확대된 묵자로 인쇄되어 보기가 편했기에 플러스 점수를 일단 줘 놓고 차례로 인물별/정당별로 점수를 매겨보고자 한다.  점수의 기준은 감촉이 얼마나 잘 느껴지느냐, 용량이 얼마나 되느냐, 안전성(스테플링)이 얼마나 있느냐, 로 따져봤다.  이런 것 때문에라도 점자를 좀 배워야할 필요성을 가끔 느낀다


1, 한나라당 박형준
: 일반 홍보물은 제법 두꺼운 편인데 점자는 3장이 전부다.  이게 일반형의 내용이 다 들어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내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문제니 내용의 질적/양적인 문제는 따질 수 없으니 패스.  일반적인 점자용지에 구형 프린터를 사용한 듯 하다.  최대한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끄트머리에 세로형으로 스테플링을 했다.  그런데 일반홍보물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이 아저씨, 너무 돈돈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산은 중요한 게 맞는데 그걸 너무 강조했다고 해야 하나?  뒤집어 생각하면 돈만 들이부어 시설만 왕창 지어주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2, 평화통일가정당 이재숙
: 일반형은 조금 얇은 편.  그런데 이제까지 많은 점자홍보물을 받아봤으나 이런 사람은 처음이다.  9장의 점자지에 1장은 표지(…)다.  게다가 스테플링이 되어있지 않고 링제본이 되어있다.  안전성에서는 최고점을 획득.  일반적인 점자용지에 구형프린터를 사용한 듯한 느낌이 든다.  내용물도 내용물이지만 어째 일반형보다 점자형에 신경을 더 쓴 흔적이 보이며 이거 하느라 돈 꽤 많이 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친박연대 유재중
: 일반형은 수영구 출마자들 중 민락동 작업자들 사이에서 ‘작업하기 편하다’는 말로 최고의 평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내게 있어서 너무 진한 파란색 계열이라 작업하면서 눈이 피곤하여 졸기(…) 바빠 일반형 공보물에 있어서 마이너스 점수를 획득.  점자형은 前 한나라당 출신 아니랄까봐 박형준과 같은 형태의 3장 일반점자용지, 세로로 스테플링 된 홍보물에 내용이 들어있는 케이스.  일반형을 내용을 보니 이 아저씨는 대체 국회의원이 되면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나와있다.  아저씨, 대체 국회의원이 되면 뭘 하고 싶은 게요?  그걸 알고 싶소.


사람 순으로 따지면 이재숙 > 박형준 = 유재중 순.
다음은 비례대표들


비례1, 통합민주신당
: 점자형은 지난 대선때보다 용지의 질은 나아진 것 같기는 한데 두께가 좀 얇아졌다.  점자를 꾹꾹 누르면 일단 표현이 되긴 하지만 그 표현력이 상당히 나빠 감촉을 느끼기 어렵다.  역시나 4장짜리의 스테플링 처리.  이런 건 차라리 A3용지에 중앙 스테플링 제본을 하는 게 낫지 않나?  약간 성의가 없어보이는 스타일이다.  일반형은 작업할 때 대충 봐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비례대표들의 이미지로 메인을 장식해서 잘못 보면 미아찾기(…)책자로 오인할 소지가 있어 보였다(농담). 


비례2, 한나라당
: 역시나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지난 대선과 같은 흑백처리된 A3일반용지에 아주 간단한 내용(두 페이지)만 실려있을 뿐, 어떤 정책을 펴겠다느니 비례대표가 누구라는 게 안 보인다.  그러면 그렇지, 니들이 제대로 하는 게 있냐…  차라리 수영구 국회의원 후보자쪽의 홍보물이 더 정성스럽겠다.  일반형은 삐까번쩍하게 만들어놓더니만….  최저점 획득


비례4, 민주노동당
: 일반형은 주황색 톤이 들어간 노동자 신문급(안습).  그런데 점자형은 제법 신경을 쓴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찍은 점자가 이번에는 종류가 다른지 감촉을 느끼기 어려웠다.  총 8페이지라 A3용지를 중앙제본한 케이스.  안전성에서 단장짜리를 제외하고 최고점 획득


비례5, 창조한국당
: 일반형이나 점자형이나 지난 대선에서 너무 힘을 썼는지 이번에는 처절할 정도로 아주 단촐해졌다.  집기도 힘들어서 일반형의 경우는 민락동 작업자들 사이에서 “최악”으로 평가되기도 했는데 내용을 파악하는데 산만한 느낌이 들었었다.  표현하고싶은 내용은 많은데 용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점자는 한 장짜리였으며 지난번 대선과 마찬가지의 용지와 점자를 넣은 방식인데 대선 때, 내가 분명히 감촉을 느끼기 힘들다고 써 놓은 걸 실시간으로 이글루스와 올블로그에 띄웠는데 창조한국당측 관계자들은 못 봤나 보다.  하긴 그들이 이글루스나 올블로그를 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감촉을 느끼기 힘들어 이번에는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


비례13, 진보신당
: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당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형과 점자형이 모두 단장짜리다.  문제는 일반형에는 비례대표번호가 씌여있지만 점자형에는 묵자로 비례대표번호가 씌여있지 않아 직접 인터넷으로 진보신당홈페이지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해서 센스없음으로 일단은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  일반적인 점자용지에 구식 프린터를 사용한 흔적이 보이며 점자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므로 패스.  일반형에서는 깔끔하게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있지만 역시 창조한국당과 비슷하게 “하고자 하는 말은 많은데 용량이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점자형으로 온 홍보물 순위를 메기라면, 민주노동당 > 통합민주당 > 창조한국당 = 진보신당 > 한나라당 순


그 외에도 작업하면서 본 자유선진당이나 친박 연대나 기독당이나 평화통일가정당같은 걸 보고 있으면 이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관심이 없거나 점자형을 만들 돈이 없어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큼 정보를 주지 않는 이상, 시각장애인들에게 제대로 평가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하긴 장애인계를 몇 군데 돌아다니다보면 이런 점자공보물도 규약에 맞지 않는다며 시끄럽기는 하지만 피드백을 받아야할 정당관계자들이나 정부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으니 늘 마음에 들지 않는 공보물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나저나 이번 공보물들의 특징을 보면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것.  오직 돈을 많이 부어주겠네, 견제를 해야 하네, 살아서 돌아가겠네(누가 죽이기라도 했냐?) 같은 이상한 뉘앙스의 문장들이 많다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이 나라의 국민들이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남의 싸움박질이나 감성에 잘 휘둘리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긴 약속도 안 지키는 이들에게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보니 국민들 스스로 포기한 면도 있겠지만 겉보기라도 좀 “이런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펴겠습니다”라고 써 주면 어디가 덧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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