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 세상엔 계시지 않는 분들이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세다 보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 중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들일 것이다

이미 돌아가시도 안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사실 할아버지를 가장 오랫동안 봐 왔지만 정말로 다양한 의미로 선진시대를 사는 분이셨기에 끝까지 가족들과 좋은 관계로는 남지 못했지만 내가 세상을 살다보니 할아버지의 삶의 방식이 이해가 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본인에게 여쭙는다면 펄쩍 뛰며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요즘 시대에 할아버지같이 사는 게 가장 편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사는 게 아니었을까 한다. 할머니의 경우는 내가 기억하는 부분이 딱 한 가지밖에 없지만 가족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만큼, 유언을 충실히 지켜도 그 유언이 들어맞을만큼 현명하셨던 분이라 하니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할머니의 입에서 이야기로 듣고 싶어질 때가 많다.
외할아버지의 경우는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셔서 우리들에게 상당히 놀림을 많이 받으셨었지만 화내는 경우를 거의 못 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그 술로 인하여 돌아가시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외할아버지께 사과드리고 싶어진다. 우리가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외할아버지를 놀리는 게 상처가 되었을텐데 한 번도 그로 인해 화내시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하셨으니 말이다. 외할머니의 경우는 내 기억에서조차 너무 희미하게 남아있는 분이라 이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성격이셨는지 궁금할 때가 문득 있다. 내가 기억력을 형성하기 전에 돌아가신 분이라 더더욱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고나 할까

사실 이렇게 이 세상에 없는 분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아마도 “후회”나 “미련”이라는 감정때문이 아닐까 한다. 늘 그렇듯 후회없는 삶을 살고, 후회없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려 해도 언젠가는 마음 한 구석에 그 “후회”와 “미련”이라는 게 남아 사람을 괴롭히는 걸 보면 살아가면서도 저런 걸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도 행복이 아닐까 한다. 아니면 그만큼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거나

과연 남은 인생동안 후회와 미련을 갖지 않고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그러면 돌아가신 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굳이 만나지 못할지라도 묘소에 가서 “나는 이렇게 후회없이 살았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야겠지

이 주제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끄적여본다

砂沙美에 대하여

게임은 게임, 현실은 현실
이 글은 카테고리: 트랙백에 포함되어 있으며 태그: , , , (이)가 사용되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